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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내가 로맨스 소설에 빠질 줄은 몰랐다 리뷰

물론 평범한 로맨스 소설은 아니다. 나는 잘 쓰신다고 생각하지만, 알아 보니 이쪽에서 소위 주류 작가님도 아닌 것 같고.

따지고 보면 이 작가님도 약점이 없는 건 아니다. 특히 이게 문학으로서, 로맨스 소설로서 치명적이라고 하면 치명적일 수 있는 것들이라서 지금껏 그만한 평판을 못얻고 계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일단 이야기 흐름의 완굽 조절이 잘 안되시는지 거의 모든 작품에서 용두사미의 느낌을 받는다. 플롯의 안배도 좀 그렇고. 출간작인만큼 분량의 문제도 있어서 그럴테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또 캐릭터들이 작품마다 다른 성격에 개성을 지니긴 했는데, 로맨스 소설의 전형적인 패턴을 답습하는 느낌이랄까. 상당히 평면적이다. 그래서 그것만으로도 내용이 어떻게 흘러갈지 추측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는다는 게 함정이지만.) 그래도 뭐, 이건 거의 모든 로맨스 소설의 공통된 한계라고 봐도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로맨스 소설인데 커플들이 연애하는 모습을 제대로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_- 작가님께서 순결 시리즈를 고수하시는 것은 물론이요, 이루어지기 전까지가 가장 애틋하고 재밌고 흥미진진하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아시는 듯하다. 덕분에 난 알콩달콩한 모습 보려고 목 빠지게 기다리다가- 완결까지 읽고 난 뒤에야 병아리 눈물만한 에필로그를 보며 눈물을 삼킨다. 이쯤되면 아무래도 난 작가님한테 조련당하고 있는 것 같다지.

당연한 이야기지만 위에 적은 단점들을 상쇄해버릴만한 장점이 있으시니 읽는 것이다. 철저히 내 개인 취향에 의거한 것들이지만 몇 가지를 뽑아 이 작가님의 매력을 어필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로맨스 소설치고는 상당한 스케일과 세심한 설정. 원래 판타지를 집필하던 분이셔서 그런지 여타 로맨스 소설 작품과는 궤를 달리하는 수준이다. 어디까지나 '로맨스 소설과 비교했을 때'라는 단서가 붙긴 하지만, 다른 작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작가님 특유의 강점이다. 또 집필하신 작품 중 단 하나를 제외하고는 각 세계가 크게든 작게든 연결되어 있다. 약간의 편집증이 있는(..) 나로서는 이런 소소한 부분을 찾아내는 과정에서도 상당한 흥미를 느꼈기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둘째로 간결한 문체와 개그 센스. 여기서 고백하는 건데 사실 난 웃음 요소에 환장한다. 그것이 절제된 문장과 어우러져 있을 때는 더더욱. 개그, 패러디, 풍자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데 이 작가님의 센스는 장르를 불문하고 상당한 수준이다. 처음 작가님의 작품을 읽기 시작한 것도, 그대로 꽂힌 것도 이때문이었다. 로맨스 소설도 재미가 있어야 읽을 것 아닌가.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필력이 좋다는 것. 묘사나 그런 문제가 아니라 문장이 매끄럽고 잘 다듬어져 있어서 술술 읽힌다. 한 번에 쭉 읽어도 정독한 것마냥 기억이 날 정도라고 하면 설명이 되려나. 난 이런 스타일의 글을 굉장히 좋아하고 동경한다. 그래서 이 작가님의 작품은 정말 순식간에 독파했다.

이제 내가 이토록 빠진 작가님의 작품들을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편의상 출간 순서대로 나열했다.

폐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이정운 지음 / 영상노트
나의 점수 : ★★★★
처음 접한 작품은 아니지만 가장 재밌게 읽었던 작품 중 하나이다. 대놓고 웃기는 작품.
로맨스 소설을 읽을 때 남자 주인공(이하 남주)만큼이나 여자 주인공(이하 여주)의 매력도 따지는 편이라서 그 기준을 무사 통과한 작품이 되시겠다. 남주고 여주고 4차원에 웃김. 그래서 더 잘 어울리는 커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뭔가 시작되려는 시점에서, 진전된 모습을 자세히 보여주지 않고 끝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아쉬움은 후속작에서 충분히 메워지니 꼭 이어보도록 하자.

기라 1, 2
이정운 지음 / 신영미디어
나의 점수 : ★★★
종이책은 절판되어 지금은 e-book으로만 구해 볼 수 있는 희귀 소설. 이 작가님의 유명작이라고 하는데 잘은 모르겠다. 마치 만화 '하늘은 붉은 강가'를 연상시키는 시공이동물.
여주가 당당하고 능력있다. 남주는 로맨스 소설 인물의 전형.
개인적으로는 중간의 이야기 흐름과 엔딩이 좀 아쉬운데, 그래도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 여기에서는 19세 이상 상품으로 나타나는데 실제로는 아니다.)

야한 夜寒 이야기
이정운 지음 / 동아(커뮤니케이션그룹동아)
나의 점수 : ★★
좀 아쉬운 작품. 다른 작품에 비해 인물들의 매력이나 전개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본편만큼이나 에필로그의 분량이 상당하고, 이게 또 시점이 바뀌어 전개되는 내용이라 플러스 점수.
뿐만 아니라 폐하 시리즈와 기라, 폐황후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구중궁궐 1, 2
이정운 지음 / 동아발해
나의 점수 : ★★
평이 가장 좋은 작품 중 하나인데 나는 그저 그랬다. 무난한 느낌. 캐릭터에 매력을 못느껴서 그런가...
기본적으로 한국풍 세계관에 신수(神獸), 선도(仙道)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루는 고전 판타지. 남장 여자도 있고.
설정이 설정인지라 문체는 고어체이다.

폐황후 1, 2
이정운 지음 / 동아발해
나의 점수 : ★★★
기라의 후속작이라고도 볼 수 있는 작품. 단, 세계는 같아도 시간대와 주인공이 다르다.
기라를 재밌게 봤다면 이 작품도 즐겁게 볼 수 있다. 다만 상대적인 재미는 기라에 비해 떨어진다 느꼈다.
내가 처음으로 접한 작가님의 작품이기도 하다. 이걸 안봤으면 아직도 이정운이란 작가를 몰랐을텐데.

제신의 분노
이정운 지음 / 동아(커뮤니케이션그룹동아)
나의 점수 : ★★★★
호불호가 굉장히 갈리는 작품인데... 난 이 작품을 정말 재밌게 읽었다. 오히려 작가님의 전작 중 줄거리와 전개 면, 그리고 마무리가 가장 깔끔하게 지어졌다고 생각하는 작품이다.
SF 배경에 철학적 내용이 가미되어 있어 이해가 어렵다거나 딱딱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긴 하다. 로맨스 요소도 적어서 장르를 결정할 때 고심했다고.
어쨌든 이정운 작가님의 작품에 빠졌다면 한 번 도전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폐하 고정하여 주시옵소서
이정운 지음 / 영상노트
나의 점수 : ★★★★★
폐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의 후속작. 자세한 이야기는 앞서 했고, 전작의 주인공들이 그대로 나온다. 정확히는 야한 이야기의 주인공들도.
워낙 주인공 커플이 웃기는 사람들이라 그냥 읽어도 재밌다. 게다가 전작에서 아쉬웠던 부분들을 채워주는 느낌이랄까, 드디어 제대로 된 커플같아 보인다.
이야기의 마무리는 여전히 좀 아쉽지만 완결편이라는 의미에서, 전작과 야한 이야기의 주인공들 후일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줬다.

경국지색
이정운 지음 / 동아(커뮤니케이션그룹동아)
나의 점수 : ★★
이것도 평이 가장 좋은 작품 중 하나인데 왠지 모르게 내 취향은 아니었던 작품이다.
작품 구성이 굉장히 특이한데 예지몽(또는 평행 세계)과 현실이 번갈아 보여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하지만 분량 문제가 있었는지 주요 문제들이 일시에 너무 쉽게 풀려 버리고, 급히 마무리된 느낌을 적잖이 준다. 뿌려둔 떡밥도 다 활용하지 못한 것 같은데...
동양풍 판타지를 좋아한다면 읽어볼만한 작품이다.

A.S.K.Y 안.생.겨.요
이정운 지음 / 동아(커뮤니케이션그룹동아)
나의 점수 : ★★★
제목부터가 범상치 않은 작가님의 최신작. 안.생.겨.요.다.
보면 알겠지만 폐하 시리즈처럼 작가님의 개그 센스가 한껏 발휘된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폐하 시리즈 쪽 개그가 더 취향이긴 하다.)
모든 작품을 통틀어 가장 현실적인 설정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다른 로맨스 소설은 뺨칠 정도로 비현실적이라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
친구에서 연인으로, 소꿉친구 관계를 좋아한다면 추천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시점이 달라지거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다룬 히든 트랙(Hidden track)이 더 많았으면 했다는 것. 야한 이야기 에필로그만큼의 분량이었다면 더할 나위 없었을텐데 말이지.

이정운 작가님의 작품은 최근작 A.S.K.Y 안.생.겨.요를 제하고 모두 e-book으로 나와있다. 나는 e-book으로 볼 수 있는 것은 e-book으로, 아닌 것은 책으로 읽었다.
취향을 타는 작가라는 평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내 경우에는 코드가 맞았다. 심지어 이 작가님을 만나기 전까지 (일반) 로맨스라는 장르에 관심도 없었다. 이랬던 내가 로맨스 소설을, 그것도 한 작가의 작품을 모두 몰아서 볼 줄이야.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이후로 다른 로맨스 소설도 읽어봤지만 이 작가님의 작품만큼 마음에 드는 것은 없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기나긴 글을 남기는 것이다.
나처럼 시중의 일반적인 로맨스 소설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유머러스한 분위기나 독특한 설정을 선호한다면 이정운 작가님의 작품을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이글루스 가든 - 리뷰를 씁시다.(애니&만화책&소설)

덧글

  • 등불 2013/01/16 20:24 # 답글

    재밌어? 근데 저거 잡으면 난 문명을 켠 것과 똑같은 상황을 맞이하겠지....?
  • 아르핀 2013/01/16 20:46 #

    내 취향에는 맞더라. 너한테까지 맞을지는 장담할 수 없고.
    그런데 만약 맞다면 문명을 한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을 거란 건 확신할 수 있다.
  • 리리안 2013/01/16 23:46 # 답글

    전 정은궐님의 성균관+규장각 시리즈를 재밌게 읽었죠^^ 그것 외에도 이것저것 읽엇었는데 기억이 잘 안 나네요
  • 아르핀 2013/01/17 00:22 #

    정은궐님 소설도 재밌죠. 특히나 성균관+규장각 시리즈는요.

    리리안님도 로맨스 소설을 읽으시는군요? 로설 주 독자층은 여성이라고 알고 있어서 좀 의외네요.
    그래도 재밌는 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재밌다고 느끼니깐요. 제가 추천한 작가님 작품도 재밌습니다.
  • 리리안 2013/01/17 10:33 #

    전 주로 역사 관련 로맨스를 읽는편인데요 가끔 그냥 로맨스도 읽기도 합니다. 재미는 장르를 가리지 않으니까요^^. 이정운 작가님 작품도 기대됩니다.
  • 아르핀 2013/01/17 17:57 #

    이정운 작가님 작품은 역사 로맨스와는 거리가 멀어요. 역사를 공부해 설정에 사용한 느낌은 나지만요.
    본문에서도 얘기했었지만 이 작가님은 취향을 탄다는 평을 많이 듣는 분이라 한 번 보시고 맞지 않으면 내려 놓으시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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